2008년 08월 21일
멸망에 관한 소고 1부 - 최후의 네안데르탈 (1)

1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 앞에 선 상대도 다를 것이 없었다. 단추가 뜯어지고 비에 젖은 꼬락서니는 당장에 쓰러져도 신기할 것이 없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말리려 들던 이웃 주민들도 이제는 멀찌감치 떨어져 선지 오래. 그들도 결국 두 사내의 처절한 싸움 속에서 한 종(種)의 운명을 건 비장함을 엿보았던 것이다.
"기… 김 사장!"
간판집 박 사장이 울먹였다. 골목을 지나던 차량의 서치라이트가 스쳐 지나갈 즈음하여 전봇대에 외롭게 달린 '해오름길'이라는 표지가 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이제 한방이야. 한방만 더 때리면 돼.
그러나 천근처럼 무거운 다리를 땅에서 떼기 무섭게, 축을 진 발이 후들거리며 떨려왔다. 팔은 만근보다 무겁다. 이 주먹을 녀석의 얼굴에까지 들어 올릴 가망이 보이질 않았다. 놈 역시 한 다리를 질질 끌며 앞으로 나섰지만 두 팔은 늘어뜨린 채였다. 다시 한번 주민들이 웅성거렸다.
이 순간에 난 뒤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마누라와 세 아이를 떠올렸다. 내 넓은 등 하나를 보며 살아온 가족들. 내 가족들에게 이 남편이, 이 아비가 아직 세상 풍파에 맞서 자신들을 지켜줄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침침해지는 두 눈에 힘을 주고 끌듯이 한 걸음을 나섰다. 놈 역시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그 부담을 자각한 듯 힘겹게 한 걸음을 앞으로 나선다. 웅성거림은 잦아들었고 다시금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훗날, 이 동네 상가에서 길이길이 전설처럼 회자될 해오름 골목의 결투가 드디어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 by | 2008/08/21 00:42 | [소설] 멸망에 관한 소고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