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1'과 포항여중 전투 [기타] 기타


 작년 이후로 6.25 관련 자료를 조금씩 모으고 있던 중, 얼마 전 전쟁기념관에 가서 6.25 관련 전시관들을 돌아보고 온 일이 있습니다. 개중에 무척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1950년 8월에 벌어진 포항여중 전투였습니다. 전쟁기념관에는 포항여중 전투를 1:1 사이즈의 디오라마로 꾸며놓은 전시항목이 있습니다.

 포항여중 전투는 포항으로 기습 침투해온 북한인민군 제 12사단의 1개 연대를 학도병을 중심으로 편성된 2개 소대가 저지하기 위해 벌인 전투입니다. 이 학도병들은 처음 수도사단에 배치되어 있다가 김석원 사단장이 3사단으로 전출되자 무장을 반납하고 제 3사단의 후방 사령부가 있는 포항에 도착했고 바로 다음 날 북한군의 포항 공격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후방사령부의 행정병들과 학도병들이 적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포항여중에서 전투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군복도 지급받지 못하고 무장도 빈약한 상태여서 실탄을 모두 소비하자 백병전에 돌입하게 되었고, 결국 71명 중 마흔 명 이상이 전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수적·화력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장장 12시간 동안 적의 진격을 지연시켰습니다.)

 그 후에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본 바, 생존자의 증언에는 북한군의 포항여중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자 포항여중에 있던 지휘관들이 모두 달아나고, 몇몇 병사들과 학도병들만이 남아 전투를 치뤘다고 하여 가슴이 무겁더군요. (육군 관련 사이트)

 헌데, 영화 소식을 듣고서 인터넷에서 '71'을 검색 하다보니 정작 포항여중 학생이나 포항시민들도 이 전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마 포항이란 도시의 특성상 타지 출신이 많은 것도 한가지 이유일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하지만, 당시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의 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일기는 피가 얼룩진 채로 이후 수습되어 여군 정훈장교에 의해 옮겨졌다고 합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 같습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71명 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청결한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사람에게 갈아 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 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안타깝게도 그의 어머니 또한 전쟁 중에 목숨을 잃어 아들이 일기에 적은 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이런 영화가 나오는 줄은 전혀 몰랐는데  반가운 기분도 듭니다. 캐스팅은 김범, 유승호와 어떤 유명 아이돌 가수 등이라고 합니다. (이런, 쓰면서 검색해보니 김범 씨는 하차하셨다는군요. 아이돌은 '승리'라는 가수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당시 상황이 어떤 식으로 묘사될지 궁금한 한편으로, 또 당시의 소품이나 풍경 등에 대해서도 실사로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p.s
 디오라마는 사진을 찍지 않아서 대신 학도병 사진 찍어둔 걸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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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ESS 2009/08/14 19:02 # 답글

    아. 상추쌈 일기(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orz)가 포항여중 전투 도중에 쓰여진 거였군요. 저도 몰랐습니다;

    포항이 지척인 경주에서도 안강전투 때 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투입되었고, 그 때 전사한 선배들의 이름이 저희 모교에 비석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전투 규모를 떠나서 포항여중 전투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네요.

    영화 '71' 저도 기대됩니다. 개봉하면 극장 가 봐야겠습니당. 'ㅡ')a
  • 아오지 2009/08/14 20:29 # 답글

    예전에 6.25 당시 파병 온 미군과 한국인 꼬마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 있었는데
    저 학도병 일기가 그 중간에 수록되어 있었어요.

    그 학도병이 치뤘을 전투도 묘사가 되어 있었는데 포항여중 전투였군요,.
  • Qui-gon 2009/08/15 16:29 #

    아오지 씨께서 말씀해주신 소설이 역으로 관심이 가네요. ㅎㅎ 제목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오지 2009/08/15 18:06 #

    워낙 어릴 때 읽은 어린이용 소설이어서 제목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내용은 꽤나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말입니다.
    (주인공 이야기 뿐만 아니라
    위의 포항전투나 인천상륙작전도 묘사했던 소설이었습니다._

    책장 한 번 찾아보고 있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 이글루 오셔서 바톤 좀 가져가 주세요. ㅜ
  • LESS 2009/08/16 11:29 #

    아오지 님 답변을 제가 가로채자면, 지경사에서 나온 '지옥 속에서 피어난 우정'이라는 소설...일 겁니다 아마. 저도 지금은 그 책을 분실해서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없네요ㅠ
  • 아오지 2009/08/16 12:04 #

    Viva! Olleh! LESS가 말한 책 100% 확실합니다.
  • Qui-gon 2009/08/16 19:57 #

    앗, '지옥 속에서 피어난 우정' ㅋ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 아오지 2009/08/16 20:51 #

    접속 하신 김에 바톤 좀 가져가 주세요.
  • 수험생羅正一 2009/08/14 22:35 # 답글

    난 그냥 상추쌈이 먹고싶음....없으니 냉수나 한잔......
  • Qui-gon 2009/08/15 16:29 #

    상추는 어딜 나가도 싸게들 파니까...
  • STX™ 2009/08/14 23:22 # 답글

    숫자 제목인 300 처럼 소수가 다수의 적을 막아내는 벙커디펜스인데 분위기는 정반대가 되겠군요...
  • Qui-gon 2009/08/15 16:28 #

    네, 아무래도 딱히 잇점이 없는 상황이고 스파르타인들처럼 전투에 익숙한 베테랑들도 아니었으므로, 비장미와 열세라는 측면은 유사해도 분위기는 사뭇 다른 양태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어요.
  • 2009/08/14 23: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Qui-gon 2009/08/15 16:27 #

    네.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 shaind 2009/08/15 00:07 # 답글

    전 포항에서 자랐는데 교련시간에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Qui-gon 2009/08/15 16:27 #

    그러셨군요. 영화 소식을 듣고 검색을 하다보니 포항 여중 학생들이나 포항 시민 분들 중에도 '이 전투를 몰랐다. 포항 사람 중에도 대체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나 저 역시 제가 사는 지역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들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아는 바가 별로 없답니다.
  • band 2009/08/16 14:25 # 삭제 답글

    포항 상도중학교출신입니다(90~92).

    중2때 역사선생님이 경주출신이셨습니다. 고향은 안강(포항과 경주사이의 동내입니다)인대 수십년동안 안강에 안간다고 하십니다. 말씀인즉 6.25때 학도병으로 참가할려고 안강국민학교로 모였는대 제일 컷던 동내형(이미 학도병에 소집되어 소대장대리인가 소대장을 맏고 있었답니다)이 넌 제일어리고 키작으니까 남아라...해서 동내 친구들 십수명중 자신과 더 어린 한명만 남았다고 합니다.

    결국은 위의 포여중(제가 포항살적에는 포여고전투라고 더 잘 알려져있었죠. 포항이 60년대이후 포철개발로 확장되어 예전 영덕군 포항읍출신들은 포항인구의 30%도 안된다고 하니 포항전투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을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에서 거의 다 죽고 2명만이 심각한 부상으로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렸을때부터 마음에 깊개 남아 동내어르신들 뵐 면목없다고 고향동내에 안가시고 경주시내에서 사신다고 하시더군요. 매년 명철이면 동내분들이 괜찮다고....너라도 살았으니 다행이다고 매년 찾아오셔서 고향동내에 찾아오라고 하시지만 발길을 그쪽으로 돌리지는 못한다고 하시더군요.

  • Qui-gon 2009/08/16 20:00 #

    정말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군요. 당시 학도병들이 안강 출신들 중심이셨나봐요. 포항, 경주 일대가 6.25 때 격전지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았습니다만, 이렇듯 귀하고 좋은 얘기를 들러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접하기 힘든 얘기였을 거예요.
  • cpdy 2010/05/23 21:45 # 삭제 답글

    저는 포항여중에 재학했었는데 이 이야기를 처음 들어봅니다. 놀라운 소식감사합니다
  • 포여중 2010/07/02 21:35 # 삭제 답글

    오늘 이내용이 영화로된 포화속으로를봣는데.
    우리학교에서 이런전쟁이일어나서
    71명의 학도병님들이 전사하신것에대해
    감동적이고 정말 눈물이멈추지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故 71명의학도병님들..
  • 아직2분은 2010/08/21 01:09 # 삭제

    아직 2분은 살아계신걸로 알고있습니다..
    아니면 그이상이나
  • 박무랑 2010/08/21 23:48 # 삭제 답글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혓바닥 때문에 죽는다 했소.
  • 이런 2013/06/06 17:49 # 삭제 답글

    포화속으로 보면 저 일기 그대로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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