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대표 (김용화, 2009) [리뷰] 각종 리뷰


 간만의 영화 감상은 아니다. 여전히 극장 걸음은 잦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듯 이글루에 영화 감상문을 작성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쓰다 만 일기처럼 손을 놓고 나니 게으른 천성에 엄두도 못 내다가, 최고의 걸작 영화를 본 것도 아닌데 이렇듯 포스팅을 남기게 되었다. 마치 연인과 헤어졌을 때에도 관심 없던 오랜 일기장을, 길을 가다 재밌는 행색의 사람을 봤다며 다시 펼쳐드는 기분이랄까.


 개인적으로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다. 보통 하는 걸 싫어하면 보는 걸 좋아하기라도 한다는데, 나는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별달리 관심이 없다. 시니컬하고 싶진 않지만 2002 월드컵의 열기도 내겐 뜨겁지가 못했다. 그저 TV 화면을 보며 눈물 찔끔 흘렸을 뿐. 그걸 갖고 거리에 나가 모르는 사람을 부둥켜 앉거나 축제처럼 소리를 지를만큼 즐겁지는 못했다. 천성인가보다. 박현욱 작가도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축구가 싫은 남자는 어쩔 수 없다고. 그냥 그렇게 살라고.


(그렇지만 나도 눈물 찍하긴 했다.)


 사실, 비인기 종목을 대상으로 한 영화라고 하는 순간 이미 대강의 스토리와 영화의 방향은 예상 가능하기 마련이다. 이미 <쿨러닝>이라는 명작 영화가 있었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히트 영화가 있었다. 거기에 한국 영화라든가, 감독의 필모그래피라든가 하는 점을 고려하다보면 95%의 스토리가 머리 속에 잡힌다.

(국가대표의 롤모델이었을 쿨러닝.
 열악한 조건에서 봅슬레이를 준비하는 자메이카 선수들의 고군분투기로
 국가대표와 마찬가지로 실화 기반의 영화다.)


 그러고 보면, 김용화 감독의 전작들은 참으로 정석적이고 무난한 한국 영화였다. 전형적인 전개 구조에 해소. 유머로 점철되다 마지막에는 적절한 갈등과 감동을 주는. 그리하여 웃음꽃을 피우다 마지막에는 적당한 메시지를 던지며 관객의 눈물을 짜내는 신파로 끝을 맺는 것이다. 알면서도 참으로 재밌다. 어떤가? 이것이 한국 영화의 성공적인 정석이 아닌가? 물론, 외국 영화도 그렇지만.


 헌데, 김용화 감독의 영화에서 유머를 주는 것은 언제나 결함 있는 사람들이다. <오! 브라더스>에서는 대책 없는 형이, <미녀는 괴로워!>의 뚱보 여인이 그러했다. <국가대표>에서는 단체전으로 넘어온다. 해외입양아가, 약물 중독자가, 아빠에게 기죽어 사는 잉여인간이, 쩌든 가난 속에 신음하는 청년 가장이, 그리고 그 청년 가장에게 기댄 모자란 동생이. 별 볼일 없는 코치와 함께 바보 군단을 이룬다.


 심슨을 보자면 미국 국민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국민 역시 못난 사람을 보며 즐기기로는 가학적 취향이 만만치 않다. 요즘은 허경영이라는 인물을 보며 느낀다. 언론에서 인터뷰까지 해가며 바보를 세워놓고. 모두가 조롱하며 웃는다. 참으로 가학적이다. 한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다. (쥐를 잡아!)


 

(심슨과 허경영. 동일한 원리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거기엔 우월적인 위치에서 행사하는 가학적 폭력이 담겨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다행히 브레이크가 있다. 관객들은 이 바보들이 펼치는 개그를 마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결함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픈 그늘을, 그러나 우리가 함께 보호하고 안고가야 하는 그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한국 영화의 정석이 있다. 편하게 웃던 관객들은 극이 종반으로 치닫을 무렵에는 진지해져가는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를 살피며 긴장하고, 눈물을 준비한다.


 영화는 앞서도 말했듯 정석적이다. 심드렁한 선수들을 결집시켜야 하는 코치의 분투.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 융화되어가는 과정. 짤막한 연속 장면들로 처리하는 고된 훈련의 장면들. 상대적 약자인 선수단이 겪는 갈등과 고통들에 좌절까지. 작품은 이를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준비했다. 엄격한 가부장, 정치적인 협회, 가난에 찌든 결손 가정과 장애 따위를. 처음에는 웃음을 내던 장치들은 하나씩 맞물려들며 관객에게 눈물을 주문한다. 감성을 자극하고자 음악 볼륨이 높아진다. 관객은 이 장면이 눈물을 흘리라 요구하는 것을 알면서도 순수한 눈물을 흘린다. 정석적이다. 계산적이다. 그러나 순간에 느끼는 감동을 작위적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하여 나는 거기에서 2002 월드컵의 잔상을 보았다. 이성적 감흥이 없이도, 다른 이들과의 공감된 마음이 없이도. 순간의 장면이 울리는 감동의 눈물이다.


 그러나 영화는 너무 정석적이라는 데에서 일말의 약점을 안았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인물의 감정을 정석적으로 다루다보니 드라마를 자아내는 주변 인물들의 변화에 좀 더 또렷한 초점을 맞춰주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주어져야 했고, 가족을 걱정하는 형에게도 단지 설명에 그치기보다는 가족애를 보여줄 결정적 한타가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생순>처럼 주변부 드라마가 부각되다 영화가 산만해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관객을 집중시키는 경기 씬을 생각해보면 <국가대표>에게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 배분에 있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부분이 있었다. (드라마, 드라마 지겹다고 하지 말자. 이런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국가대표의 감동 포인트는 바로 드라마에 있으므로.)


 그리하여 의도대로 관객은 눈물을 흘리지만, 거기에서 좀 더 끌어낼 수 있는 긴장의 완급이며 극적 연출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덧글

  • 아오지 2009/08/09 14:05 # 답글

    본 사람들 모두 평이 좋더군요.

  • Qui-gon 2009/08/09 20:26 #

    네, 분명 돈이 아까워질 영화는 아닙니다. 추천하기에 부담이 덜하네요. 저도 러닝타임 내내 재미있게 보다 왔거든요.
  • 호워프 2009/08/09 14:09 # 답글

    좋은 감상 잘 보고 갑니다. 저도 며칠 전 보았는데. 무척 시원한 영화더군요.
  • Qui-gon 2009/08/09 20:26 #

    하핫,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여름이다보니 소재도 참 좋았던 듯.
  • 아오지 2009/08/10 16:54 # 답글

    하지만 이번 주말에 전 뵨사마를 보기 위해서 지아이조를 볼 것입니다.
  • Qui-gon 2009/08/10 19:08 #

    지아이조 역시 아무래도 액션씬과 스케일있는 특수효과가 많다보니 극장에서 즐기기에 좋은 영화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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