降臨 #3-1: 열두 찐따와 십삼 일의 금요일.

#3-1: 열두 찐따와 십삼 일의 금요일.

 민규에게 사전 정지(整地) 작업은 중요했다. 경쟁자에게는 그의 추종자들이 흔히 사도라 부르는 열두 찐따가 예비되어 있었다. 하나도 버거운데 무려 열셋이라니! 민규는 불현듯 다섯 살 무렵, 그의 어머니가 생각 없이 보여준 13일의 금요일이란 영화를 떠올린다. 제이슨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열셋이라는 숫자는 참으로 저주스럽고 흉물스러운 숫자인 것이다.

 지난 2년의 간극.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찐따가 경쟁자에게 들러붙었을까? (물론, 민규는 몰랐지만, 최소한 빌립보는 아직 들러붙지 못했을 것이다.)

 찐따들은 명성답게 한번 들러붙은 후에는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유다를 배신케 한 악마가 지금까지 호사를 누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민규가 벌여야 할 정지 작업은 이들을 먼저 찾아내어 타락시키는 일이며 그리스도에게 합류하는 것을 늦추는 일이고 그들에게 회의주의를 주입하는 일이었다! (*주1)

 하지만 그는 아직 이 열두 찐따가 어떤 나이에 어떤 성별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했다. 갈 길이 멀었다.

 그들 중에 니체의 책 몇 권을 권해도 좋을 어설픈 지성이 있다면 일은 한결 쉬울 것이다. 니체는 지옥의 형제들도 감탄하는 언변을 가졌다. 예전의 세리 같은 세무공무원이나 열심당원 같은 과격분자라면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저런 종자들은 저절로 타락할 가능성이 크다.(*주2) 전처럼 순박한 어부들의 경우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했는데 이것이 다소 어려웠다. 2천 년 전에 한 악마가 선택한 방법은 어획량을 줄여 세상과 신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는데 지옥에서는 꽤 신선한 방법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뼈있는 유머 한 마디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얼마나 놀라운 센스인가? 실제로 이 멘트는 경쟁자의 것일지언정 지옥에서 오랫동안 유행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낚는다’라는 말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그 말이 가진 힘은 유효할 수 있다. - 2천 년 전의 예수는 이제와 생각해도 확실히 난 적이었다.

 민규는 한편으로 정지 작업이 원만히 이행되지 않을 경우도 따져야 했다. 경쟁자는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몰랐고 언제 마주치게 될지를 알 수 없었다. 이에 대비하자면 우선 사회로 나가야 했는데 특히 학교라는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접근해 추종자를 모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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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지옥의 형제들은 인간들의 사상적 발전을 자극하여 절대적 신성이나 가치를 해체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사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기초 연구와 작업이 시작되었다.

*주2)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지옥의 통계일람'에는 지난 60년간 세무공무원의 78%, 과격한 급진좌파 또는 극우보수 운동가의 98%가 이르든 늦든 타락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by Qui-gon | 2008/07/08 13:45 | [소설] 降臨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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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케트라브 at 2008/07/08 13:48
오늘 올라온 소설들은 다 연작들?
Commented by Qui-gon at 2008/07/08 13:58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각 편이 이렇다할 완결성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연작이라 말하긴 어렵겠지요. 그냥 단편적 감각을 가진 중장편 정도일까요? 딱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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