降臨 #1: 일곱 살 민규의 우울.

#1: 일곱 살 민규의 우울. ((퇴고일: 2008. 7. 7))

 민규는 우울했다.

 오늘은 그가 태어난 지 만으로 여섯 해가 되는 날이었고, 좀 더 자세히는 78개월. 일수로 따지면 2197일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별 의미가 없고 이렇다할 특징도 없어 보이는 숫자들이지만, 만약 정신장애자의 편집증적 사고를 거쳐 윤색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197일은 윤년 한 해를 낀 6년의 시간에 6개월을 더하고도 6일이 남는 시간이었다. 정리하자면 이날은 민규가 태어난 지 6년 6개월 6일째 되는 날이었는데, 성경의 언어적 변형을 영화가 부추겨 얻은 결과로 보자면, 이런 우연찮은 숫자에 대해 부여되는 것은 불쾌한 감정이며 재수 옴 붙은 날이라는 편견이다. 그리고 뜻밖에도 민규가 이날에 불현듯 깨달은 인생의 사명 역시 재수 옴 붙기로는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사실, 이러한 사명을 얻기 전까지 그의 삶은 무척이나 평범했다. 굳이 유별난 점을 들자면 알콜 냄새가 나는 젖을 물고 자랐다거나 유전적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십 명의 남성과 DNA를 대조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였다. 이런 사실들은 민규에게 사소하나마도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모친이 고객과 벌이는 섹스를 목격했을 때도, 창녀촌을 찾는 성질 나쁜 손님에게 손찌검을 당할 때도 그는 늘 밝게 웃는 낙천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그로서도 우울함과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는데, 유전자 깊숙이 숨겨져 있던 여러 개의 코드들이 그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삶을 강요한 까닭이었다. 창조의 비밀을 숨긴 ATG 따위 복잡한 염기서열의 작용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과 주어진 의무를 깨닫게 했다. 그리하여 민규는 자신의 지난 행동 양식에 수정이 필요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큰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1)

 우선, 민규는 적 그리스도였다. 주지했다시피 그는 지난 6년 6개월 6일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명의 깨달음은 입대 이틀 전에 징집영장을 받은 사람의 그것보다 더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 혹은 원나잇 스탠드의 결과로 임신 3개월이 지나 임신 사실을 깨달았을 때만큼. 일곱 살 민규가 이 엄청난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날짜에 맞춰 활성화된 비밀 유전자의 완화 장치 덕분이었다.

 사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경쟁자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뿐’으로, 내용의 단순함만 두고 보자면 적잖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간단한 사명에는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기술(記述)의 단순함이란 곧 다양한 상황의 변화를 포괄하는 것이고 경쟁자가 가진 권능과 지혜를 감안하면 이 일은 언제라도 복잡하게 심화될 공산이 컸다.

 따라서 그가 그의 경쟁자와 조건을 비슷하게나마 맞춰 강림을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아마 처음의 계획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헌데, 중요한 순간에 그 계획이 틀어졌다. 그의 유전자 염기서열의 일부 정보는 그의 뇌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되었다.

「나는 경쟁자보다 최대 2년이 뒤쳐져있다.」

 이것은 고리타분한 상징적 관습이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해 발생한 일이었다. 지옥의 군주들은 대개가 그랬는데, 그들은 질서를 세운 신에 대적해 혼돈의 권능을 휘두르기보다는 신의 질서 속에 안주한 채 작은 죄악으로 대적하길 좋아했다.
 규칙의 굴종자. 어리석은 보수주의자들 같으니라고.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규는 그들에 대한 비난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상징적 문제의 해법이라는 것은, 2천 년 전, 예수가 굳이 동정녀의 몸을 빌어 탄생했던 사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경쟁자와 비슷한 대유적 상징을 선택하다니. 지옥 사람들의 창의적 사고라는 것은 얼마나 조잡한가?
아마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경쟁자는 여전히 동정녀의 몸을 빌었을 것이고, 대개 처녀성을 간직하는 이들의 순진함과 정숙함을 따져보면 그의 탄생은 무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규는 사정이 달랐다. 만약 적 그리스도가 동정녀의 순결한 자궁에 반해, 가장 더럽고 죄악이 넘치는 자궁 속에서 태어나야 한다면! 그래, 그 죄악 넘치는 자궁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기독교의 엄격한 성 윤리에 반하는, 오래된 죄악으로 선택된 그것은 다름 아닌 매춘이었다.

 맙소사.(*주2)

 지옥의 군주나 그의 관료들은 세상의 변화에 너무나 무심했다. 형식주의, 할거주의, 무사안일. 이런 한심한 악덕의 대가(大家)들이여.

 과거와 달리 의학 기술이 발달해 낙태는 손쉬운 시술이 되었고, 악마들이 반기던 종교의 쇠퇴는 윤리 의식의 몰락으로 이어져 어떤 여성도 낙태 시술에 좀처럼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창녀의 자궁이 가장 더러운 것이라니! 창녀의 자궁보다 더러운 것은 창녀의 자궁에 내뿜어진 남자들의 정액이고, 창녀의 윤리보다 더러운 것은 정신적 순결을 강조하며 뜨거운 밤을 지새우는 이 시대의 헤픈 남녀들이 아닌가.

 상대주의와 회의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죄악을 규정해보겠다는 낡은 의식도 문제다. 세상은 타락하고 발전하는데 악마들만 도리어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셈이다. 죄악과 더러움은 차치하고 차라리 색다른 탄생을 통해 상징을 꾀해야 했다. 동성애 레즈비언 커플의 자궁에 들어선다던가, 아니면 동정남의 방광에 들어선다던가.

 아무튼, 적 그리스도는 창녀의 몸에 잉태되어 두 번의 중절로 죽임을 당했고 그 결과 경쟁자와 돌이킬 수 없는 2년의 간극이 벌어졌다. 2년을 앞서 시작해도 자신이 없는 판에 초장부터 크게 삑사리를 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민규는 겟세마네 언덕. 아니, 가까운 몽촌토성에라도 올라 지옥의 군주들에게 짐을 거두어 달라 저주하고픈 심정이었다.

 그리하여 민규는 일생에 사용하지 않았던 어휘 하나를 이 날에 처음으로 내뱉었다. 창녀를 찾는 남자들에게서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그 말은, 선하고 순진했던 소년 민규의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한마디였을지도 모르겠다.

 "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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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런 유전자의 작용에 의한 사명의 깨달음을 굳이 설명하자면 덕 높은 고승들의 돈오를 들어 비유할 수 있겠지만, 사유가 아닌 생득적 본능에 기반하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편, 이 과정은 유전자를 조작하여 평범한 인간을 변형시킨다기보다는 교묘한 창조의 과정이며 지옥의 의식체를 전이하고 발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4차원적 사고에 기반하기 때문에 여러분 같이 평범한 3차원 인간 독자들에게는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사실 그 내용이 이 글에 있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주2) If there is someone who has an intention to translate this literature into English, I'll beg you. '맙소사' must be translated as "Oh, Your God!", as not "Oh, My God!". It is the reason that using last way for translation can threaten the justification for existence of Min-kyu. So, Should you translate it as "My God!", It will be a fatal mistake on all logic system of that translated tex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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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i-gon | 2008/07/08 12:37 | [소설] 降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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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다크엘 at 2008/07/08 13:12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Qui-gon at 2008/07/08 13:57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메피스토 at 2008/07/09 00:53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로릭 at 2008/07/12 18:14
와, 재밌는데요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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