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3일
멸망에 관한 소고 1부 - 최후의 네안데르탈 (2) (08.23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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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내 나이 마흔 여덟. 가는 세월이 소갈머리 새치처럼 익숙해질 무렵에 슬하에는 늦장가로 낳은 자식이 셋이나 되었다. 새침하고 깐깐한 고2 딸이 맏이였고, 부쩍 반항이 심해 어디로 튈지 모를 중3 아들 녀석이 둘째. 막내는 이제 초등학교 말년생이지만 나이가 어려도 제법 속이 깊은 재롱동이였다.
여기에 얼굴 생김이 곱지도 밉지도 않은 마누라. 학창시절 만나 연애로 골인을 한 이 여자는 정도 많고 웃음도 많아, 남들 앞에 말하긴 부끄러워도 다툼이 없이 부부 금슬이 꽤나 좋은 편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내 나이대 남자들이 특히나 신경을 쓸 사회적 성공의 척도란 크게 두 가지였다.
그 첫번째가 승용차 배기량이다.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중장년치고 여기에 슬며시 신경 안 쓸 남아가 얼마나 될련가. 사실 이 척도란 것이 이리저리 일에 치여사는 고단한 한국 수컷들이 제 힘을 과시할 몇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이기에 유달리 애착이 심한 것은 아닌지. 고유가 시대다 환경의 시대다 말이 많지만, 내가 생각하기로 설령 전기 자동차가 상용화되는 날이 올 지라도 가련한 수컷들은 결국 정격출력 단위로 경쟁을 이어갈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 배기량보다 중요한 척도라면 다름아닌 직함이다. 혼기를 놓쳐도 단단히 놓친 수컷들 주제에 결혼정보회사의 상품이라도 된 마냥 반(半)계량화 해 등급이나 매기고 앉은 것이 한심하다 하겠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본성인 걸 어쩌랴. 대기업 임원, 끝발 좋은 정부부처의 이사관이나 부이사관 즈음. 탄탄한 중소기업의 사장이나 수입좋은 전문직 종사자를 으뜸으로 밀어놓고 그 아래로는 복잡한 분류도에 따라 이류, 삼류, 심지어 불가촉 천민을 오가며 아웅다웅 거린다.
나로 말하자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모델명과 연식을 바꿔가며 쉬임없이 찍어대던 중대형 세단의 주인이었고 직함은 사장이었다. 그렇다하여 어설픈 와인 취미가나 아마추어 비평가처럼 어렵잖게 품평하진 마시길. 내 직함 앞에 붙은 ''십 년차의 동네 치킨 집'이라는 수식어 하나에 일류의 직함은 순식간에 이류와 삼류의 경계를 오가고 있으니. 그나마 이류라 자찬하는 것은 그저 고 앞에 숨은 '나름 잘 나가는' 덕분이다.
좋은 회사 그만두고 치킨 집 시작한 얘기야 앞서 꺼낸 말에 지금으로부터 년수를 따져들면 짐작이 들법도 하겠다. 어찌나 진부한지 스스로 입에 담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굳이 입을 열면 IMF에 명예퇴직 두 단어로 충분할련가. 하기사 60년대 상경한 방물 여직공이며 70년대 운동권 학생에 80년대 해외건설 노동자만큼이나 - 90년대 IMF 명예퇴직이란 것이 시대의 아이콘이라면 아이콘인데. 이 시대 내 나이 가장들 중 그런 고초 안 겪은 이는 또 얼마나 되겠는가? 늦은 술자리. 고성방가 속에 친구들이 인생 파란을 얘기할 적에도, 슬며시 내 얘기를 감춰 빼어놓는 것이 다 그런 이유였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거, 남의 눈치 보며 살면 고단하지 않소?"
참으로 좋은 소리. 하지만 얼마 안 남은 명줄 붙든 노인의 풍월이거나 머리 덜 여문 아이들의 설익은 헛소리인 것을. 제 자식이 부모 인적란에 적는 직업이 아이들 마음에는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 연 수입에 적어넣는 것은 또 어떻게 어떻게 비교가 되는지. 애들 세상 풍파 일찍 배워 좋지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려면 이 얘기는 뭐하러 듣고 앉았나. 부모 심정 모르면서 내 얘기에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이 참으로 우습소.
그래도 백보 양보하자면 나도 이젠 직함이니 뭐니 조금은 초연해진 것도 같고, 한 때는 그렇게나 신경을 썼던 것이 그저 잘 나가던 대기업 부장 시절의 추억 탓은 아닌가 짐작을 해본다. 일류 진입을 눈 앞에 두고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의 심정이란 것이 숫자 하나 차이로 몇 천 만원을 받은 로또 2등 당첨자며, 형제들에게 밀려 떨어진 채 멀뚱히 저 위 둥지를 바라보는 낙오된 백로 새끼의 심정과 다를 게 뭐 있겠나.
"밖에 나가도 잘 먹고 살 거야. 김 부장 같은 사람이면 뭐."
불러놓고 퇴직을 권유하던 송 이사의 낯짝이 떠오른다. 말이 좋아 권유지 하는 얘기를 들으면 내 퇴직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백지장이 된 머리에 조심조심 글씨를 써넣다보니 이내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사직(辭職)이 사직(死職)으로 들리는 이 판국에 송 이사 이 새끼, 넌 실실 쪼개고 앉았단 말이지? 당장의 성질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멱살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얼마 후면 사라지고말 부장 직함의 알량한 체면 차림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서열 사회에서 대리 시절부터 늘 나보다 서너 해를 앞서가던 이 입사 동기 친구에 대한 습관적 굴종 때문에.
짐을 꾸려 나올 때에야 비로소 나는 이를 갈며 속으로 뇌까렸다. 그래, 좋다! 그렇게 비열하게 히죽거리며 거기 남은 송 이사, 넌 남아서 얼마나 잘 버티는지 두고 보자! 그 이후 송 이사는 상무가 되고 부사장이 되더니 지금은 회사 사장이 되어 신문 경제면에서 종종 이름을 들이밀곤 한다.
쓰라린 기분이야 지금에도 다를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 와 생각하면 그저 다 추억인 것을. 그 이후 십 년. 부끄러울 것이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해도 나름 떳떳하고 자랑스럽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 인생 길이 평탄치는 않았다. "퇴직하면 치킨 집이나 할까." 우습게 보지 마라. 닭발에 콧등 긁힐라. 막상 준비하려면 이게 얼마나 골치아픈 일인지. 만만한 장사가 아니다.
내 이 동네에 치킨 집을 열던 시절만도 이미 자리를 잡고 철옹성처럼 버틴 경쟁자가 셋이나 되었다. 이리저리 사전조사를 하고보니 나 하나 비빌 언덕이 있겠거니 했는데. 사람들 생각이란 게 다 비슷비슷한지라 막상 개업을 하고보니 나 같은 명퇴자의 치킨 집이 셋이나 더 생긴 것이다.
이거, 대여점이 나았으려나. 그래도 프랜차이즈 가입비용이니 인테리어 비용이니 다 계산하면, 이제 와 업종변경을 하기엔 매몰비용이 너무 컸다. 개업 후, 하루 이틀간 지인들이 올려준 매출을 냉정히 정산하며, 나는 부인과 아주 결연한 결심을 하였다.
"이대로 가면 또 둥지에서 떨어진 백로 새끼 되겠어. 이번엔 다른 형제들 다 떨어뜨리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자고."
부인이 내 뜬금없는 말을 이해했는가는 모르겠으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래요. 난 당신만 믿고 따라갈게요."라 했다. 내심 살피기로 '우린 치킨 집인데 왜 병아리가 아니라 백로 새끼예요?'하는 듯도 했지만, 당장에는 그 말이 왜 그리도 감동적이었던지.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이 기막힌 환경 변화에 맞서 싸웠다.
대기업의 울타리를 막 벗어난 나는 새로운 유형의 살인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다행히 내가 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풍성하던 머리칼이 장렬히 전사했다. 밤마다 마누라는 내가 잠들었겠거니 벗겨진 머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눈물을 짓곤 한다. - 나 역시 슬프지만 그래도 녀석들, 제 할 일은 다했는 걸.
그런 근면함에 더해 운도 좋았다. 식물성 기름이 좋다 나쁘다 하던 시기에도 우리 가게의 프랜차이즈는 올리브유와 고급 식재료로 무장해 오히려 매출이 신장했다. 하루하루 오일을 갈고 며칠이 지난 식재료는 그때그때 폐기하는데 맛이 나쁠리 없었다. 소득수준이 그리 높은 동네는 아니지만 과감히 고급 프랜차이즈를 선택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주효한 셈이다.
치열했던 3년이 지나며 문을 닫은 치킨 집이 넷. 우리 가게는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자정을 넘기고 이른 새벽이 될 즈음하여 가게는 문을 닫았다. 프랜차이즈의 관리는 꼼꼼했다. 아까워도 오늘 쓴 기름은 모두 빼어버리고 식기를 세척한다. 하루갈이로 하는 일임에도 기계에 묻은 기름 빼기가 쉽지 않다. 오늘은 골골대는 취객이 없으므로 마누라에게 서둘러 가게 정리를 맡기고서 일찌감치 튀김 기계를 닦았다.
소재가 끝나면 남는 일과는 매출 정산. 프랜차이즈에서는 품목별로 정리된 매출 시스템을 도입해 필요한 식재료 조달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말하지만, 그 속셈이야 내가 알지. 저네들이 짜낼 수 있는 돈을 더 짜내고 아낄 수 있는 건 더 아끼려는 수작이다. 실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그렇잖아도 이런저런 행사며 마케팅 비용으로 업주에게 부담 지우는 꼴이 맘에 안 드는데 내 심사가 괜히 사납다.
그래도 그 상표 달고 장사하는 한 귀찮아도 별 수 있나. 다만 이 일이 근래에 제법 골치였던 것은 내가 컴퓨터에 익숙치 않은 탓인데 마누라도 더 나을 것이 없다보니 이 일이 늘 진욱이에게 돌아갔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진욱이는 우리 집의 배달 사원이었다. 녀석은 매출을 정산하며 늘 투덜거렸다.
"사장님, 전에도 가르쳐 드렸잖아요. 좀 배우세요. 이거 컴으로 입력하고부터는 맨날 퇴근이 늦어. 가뜩이나 잘 시간도 부족한데. 월급도 안 올려주면서."
볼멘소리에 나는 무안하게 웃으며 녀석을 달랜다.
"임마, 너도 나이가 들어봐라. 배워도 자꾸 잊지. 허허. 그리고 월급이야 때 되면 어련히 안 올려줄라구?"
그래도 수명 짧은 배달 사원치고 우리와 같이 지낸 시간이 꽤 길어 이리저리 정이 든 녀석이다. 마누라가 진욱에게 콜라 한잔을 내다 주며 어깨를 토닥여 줬다.
"내가 시간이 나면 애들한테 말해 좀 배워보도록 할께."
어쨌든 그렇게 하루 영업 일과를 무사히 마쳤다. 셔터를 내리고 마누라와 집으로 나선다. 길 건녀편의 곱창집이 눈에 띈다. 인부는 밤이 깊어 떠났지만 공사 중이고보니 보기에 어지럽다. 저기에 이번엔 무슨 가게가 들어오려나. 좀 괜찮은 사람이 들어오면 좋을 듯도 한데. 곱창집 장 사장은 데면데면 인사도 나누고, 함께 서서 음료와 커피를 하던 사이였다. 또래 자식이 있어 얘깃거리가 적지 않았던 장 사장. 딱 그 사람만 같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길을 걷고보니 어느 새 집 앞이었다. 저 편으로 드문드문 불이 들어온 아파트.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은 보금자리. 이 늦은 시각에 유독 우리 집 방 하나가 밝다. 둘째와 막내 녀석 방. 저 녀석 또 이 시간까지 게임질을 하고 있겠지. 보나마나 그럴 거야. 막내야 나이가 어려 지금은 깨어있고 싶어도 잠이 들었을 시간이거니와, 둘째 녀석이 이 시간까지 공부 같은 것을 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녀석에게 뭐라 말하면 대서지나 않을까하는 근심. 얼마 전 내가 오해를 하고 녀석을 혼낸 것이기는 하지만, 눈에 독기를 품고 바락바락 대드는 데 이 애비의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하였다. 천성이 나쁜 녀석은 아닌지라 결국 수그러들고 울면서 빌었다. 따져보면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겠거니. 하여도 확실히 아이 때 심정과 부모 때 심정이 다른 것이다.
# by | 2008/08/23 17:58 | [소설] 멸망에 관한 소고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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