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의 성립 [기타] 기타

 해방정국 이후, 남한에서 송진우, 여운형, 김구, 이승만, 박헌영 등 쟁쟁한 항일운동가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극심했던데 반해, 북쪽은 좌익만이 있어 정국의 갈등이 미미했다.

 당시 북한의 정치파벌은 6개로 정리해볼 수 있다.

① 국내파 :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구성시 초대 책임비서를 맡았던 김용범과 박정애, 정통공산주의자인 오기섭과 주녕하 등.
② 민족주의 계열 : 조만식과 한준혁 등.
③ 항일빨치산파 : 김일성, 최용건, 오진우, 최현, 김책, 이을솔 등 동북항일연군 및 88여단 세력.
④ 소련파 : 허가이, 박창옥, 박용빈 등을 위시해 소련에서 건국 준비를 위해 파견한 엘리트 460여명.
⑤ 연안파 : 중국 공산당 계열로 김두봉, 최창익, 박일우 등.
⑥ 남로당 : 박헌영과 이승엽 등.

 공산당은 한인 사회당으로부터 출발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박헌영에 의해 서울에 공산당이 창설되었다. 일국 일당주의에 입거해 1945년 10월, 소련이 진주한 이북 지역에는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창설되었는데, 초대 책임비서는 앞에서 소개한대로 국내파의 김용범이었고, 2대 책임비서는 항일빨치산 파의 김일성이었다. 조선공산당은 후에 김두봉을 중심으로 한 연안파의 신민당과 결합하여 노동당의 전신을 이루게 된다.

 북한의 공산당은 토지 개혁을 통해 무산자의 지지를 유도했고, 48년 8월에 북한군을 건군하고 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국함으로써 체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파벌은 1950년대의 종파분쟁을 통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 것은 항일무장투쟁 경력이 적은 김일성에게 있어, 거물급 정적이 많았던데 그 이유가 있는데, 민족주의 계열의 경우 조만식은 소련에 대한 비협조로 도태되었고, 한준혁은 김일성이 원산항에 입항하기 전에 이미 암살당해 제거된 상황이었다. 본격적인 숙청작업으로 가장먼저 사라진 파벌은 박헌영을 거두로 한 남로당 파로 52년 12월 전원회의에서 남로당계 인사들이 숙청당했다. 남로당의 숙청 이유는 미제간첩행위였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남로당 세력이 북한 노동당 세력보다 컸던 탓이다. 55년 12월 즈음에 경제발전 노선을 두고 갈등을 보이던 소련파가 제거되었고, 반김일성 운동을 계획하던 연안파와 소련파가 56년 8월 전원회의를 통해 숙청당했다. 또한 58년 3월에는 군부 내 연안파 세력에 대한 숙청이 단행되었다.

 70년대에 이르러 벌어진 숙청작업은 김정일의 후계자 체제 확립을 위한 투쟁으로, 항일빨치산파 가운데 김일성과 함께 투쟁하지 않았던 세력들이 제거되었는데, 연안파의 마지막 엘리트였던 김창만이 제거되었고, 갑산파 세력, 외국 유학파 세력들이 제거당했다. 김창봉과 허봉학 등 동북항일연군으로 김일성 부대에 속하지 않았던 세력이 제거된 것 역시 김정일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최용건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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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참고자료는 '10명의 북한 출신 엘리트들이 보는 10년후의 북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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