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뮌헨 (Steven Spielberg, 2005) [리뷰] 각종 리뷰

Munich (Steven Spielberg, 2005)
출연: Eric Banadinovich, Daniel Craig, Mathieu Kassovitz

 올림픽은 종종 ‘세계 평화의 축전’이라 불리우곤 한다. 순수한 스포츠 정신 아래 당당히 서로의 역량을 겨루고, 조국의 국민들에게 뜨거운 열광과 환호를 선사하는 까닭이다. 성공적으로 개최된 88올림픽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올림픽이다. 84년은 내가 올림픽이라는 것을 인지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올림픽 공식 주제가는 ‘손에 손잡고’.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게 되면서, 나는 그 가사의 의미를 음미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던 기억이 있다. 서울 올림픽 당시 세계는 비교적 평화롭고 비교적 조용했던 때였으니까.

 그러나 72년 뮌헨 올림픽은 ‘세계 평화의 축전’이라는 찬사가 무색했던 때였다. 오랜 갈등 속에 서로에 대한 증오의 골이 깊어졌기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 곳에서 사람들은 피와 폭력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과거 한반도의 주민들이 겪어온 과거의 상황과 비슷한 국면에 처해있다. 우리 조상들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그에 대항할 힘을 기르지 못하였으므로 침탈에 인내하며 평화를 주장하고 갈망하였다. 이스라엘은 수천 년을 조국 없이 떠돌다가 마침내 자신의 나라를 되찾았다. 그들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고, 그 희생은 끝을 기약할 수 없는 갈등을 초래했다. 레바논 침공과 같은 전면적인 전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긴장과 투쟁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그들이 그 땅에 있는 한, 모든 이슬람 세력과 타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 열 사람을 모으면 각각이 다 다르듯, 수억의 이슬람 역시 극렬분자도 있고, 원리주의자도 있고, 타협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한 땅에 살아가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 것은 타협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그러한 결과로 이스라엘은 과거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쳤다. 그 것은 사소한 국경 분쟁이 아니며, 전쟁에 패배할 경우 국가가 사라지고 국민들이 학살과 핍박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개인의 목숨과 나라의 명운이 달린 전쟁이었다. 그들은 적었고 적은 많았다.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공세적 입장의 전쟁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이 실제 파멸의 국면까지 내몰린 적은 적지 않다. 무능한 아랍측 지휘관들의 실책과 이스라엘의 기지로 그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러한 기억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인들에게는 두려움으로 무의식의 기저에 깔려있을 것이다. 그런 탓에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은 언제나 집요했다. 로베스피에르가 공포로 질서를 획득했듯,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공포를 적에게도 심어주고자 했다. 그들의 테러에 대한 보복은 대단한 정보력과 작전 실행 능력을 자랑하던 모사드를 통해 가능했다. 그리고 이들의 가장 유명한 신화는 바로 영화 뮌헨이 다룬 내용으로 남아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제 상황에 상당히 가깝게 연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화’라는 것은 언제나 영화에 대한 몰입감과 극적 긴장감을 더해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를 긴박하게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세기의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유대인인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에는 유대인으로서의 한계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공정하지 못한 자세에 대한 염려도 가능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그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뮌헨 사건의 핵심에 서있었던 인물처럼 폭력과 폭력의 충돌에 부정적이었다. 이는 영화에서 정보책의 음모로 테러집단과 한 숙소를 쓰게 되었을 때 나누는 그들의 대화와 인간적 공감, 자신들의 암살 대상이 실제 표적인가에 대한 끝없는 의문 - 실제로도 보복의 대상이 된 모든 사람들이 뮌헨 사건과 직접적 연관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함, 그리고 주인공 애브너가 ‘화해의 뜻으로 식사를 하고 가지 않겠습니까?’라며 작전을 지시하던 상관에게 건네는 상징적 메시지를 통해 표출된다.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의 지나치게 적극적인 자위권 행사(?)에 대해 평화를 갈망하는 이상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높아져간다. 사건에 연루된 이들과 스필버그 감독의 목소리는 언제나 현실 앞에서는 그저 아름답고 올바른 목소리일 뿐이며, 이 폭력과 폭력은 어느 한 쪽이 말소되지 않는 한은 몇 세기를 지나도 사그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바다 이야기’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워지는 가운데, 얼마 전 여론 물타기라도 시도하는 것이었을까? 남북공동선언이 있기 전까지 4~5년간 대남 첩보를 해왔던 북파 간첩 사건이 공개되었다. 서해 교전의 일 역시 그리 오랜 얘기는 아니다. 어느 한편엔가 폭력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사는 우리 민족,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뮌헨의 이야기는 남다를 수 없을 것이다.


덧글

  • 너비아니 2006/08/25 16:21 # 답글

    내용보다는 그 긴장감이 지속되는 연출이 죽였어. 그나저나 링크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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