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8일
降臨 #5: 아마겟돈 Z - 적 그리스도의 지옥 공청회 中.
#5: 아마겟돈 Z - 적 그리스도의 지옥 공청회 中.
처음에는 계획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요.
"그랬죠. 그 무렵 저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학교에 진학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추종자를 얻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계획이 틀어진 거죠. 학교의 급우들은 저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듯 했는데 실은 알게 모르게 벽을 둘러치고 있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이 부정한 제 존재를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더군요. 아버님이나 다른 군주님들께서도 아시겠지만, 그런 경우라면 제 일이 무척 어려워질 테니까요.
다행히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문제는 여전히 있었어요. 전 창녀의 자식으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예쁜 옷이나 좋은 학용품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라벨만 붙지 않았을 뿐, '난 하위 5%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할 추레한 옷을 입고 다녔죠. 그게 바로 사단이었어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신조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빈한한 저를 따돌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건 우리가 설파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단면이었고요!
특히 여기에는 그들의 부모가 크게 한 몫을 했는데, 아마도 그들은 등하교 길에 아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이렇게 말했겠죠. '아까 그 애 이름이 뭐니? 그 헐렁한 옷을 입은 애 말이야. 민규? 그 애 이름이 민규였구나. 앞으로 민규랑은 놀지 마라. 왜 그러냐고? 아무튼 민규랑은 놀지마!'하는 따위의 가정교육 말예요.
제가 그 사실을 안 것은 짝꿍으로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민지가 어느 날 갑자기 냉랭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황 파악을 위해 집요하게 물으니 민지는 "우리 엄마가 너같이 더러운 애랑 놀지 말랬어."라 말하더라고요. 뭐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눈에서 눈물이 핑 돌대요. 정말 당황스웠지요. 당시에는 인간의 몸을 빌리고 있어 가끔 그네들의 감성을 느낄 때가 있었거든요. 부신피질과 호르몬 말예요. 아무튼 제 생각엔 군주님들께서도 인간 부모들의 저런 교육법에서 우리의 새로운 악덕을 연구하고 개발하실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로 접근이 가능한 아이들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튼, 당시로서 제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아이들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런 녀석들은 사심이 없고 순진해 우리의 술책이 파고들 여지가 없었죠. 그들을 이용하자면 악마의 술책이 아닌 인간의 간교함이 필요했는데 제 조건은 그런 면에서 어중간했습니다. 이쪽도 반이고 저쪽도 반이고. 전 우리의 적이 2천년 전에 왜 그리 고민이 많았고 방황도 많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죠.
학교에서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중간고사였어요. 중간고사에서 전환점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죠. 뛰어난 학업 성적이라면 이기적인 아이들의 벽을 허물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은 인간들의 드라마를 통해 얻은 세상의 진리였는데....... 음, 저쪽 세상은 원래 그래요. 가난한 자는 학업을 성취해 부유한 자들과 교류할 수 있고, 그들의 중간 관리인으로서 반쯤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중간에 많은 시간이 공백으로 남지 않습니까? 당신은 언제 어디서 강도 높은 경쟁에 노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말씀하신대로 그 순간에도 제 경쟁자는 옛 제자들을 찾아내며 세력을 모으고 있을 공산이 컸죠. 저도 바지런히 움직이며 그들의 계획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저쪽에는 '궁핍은 발전을 낳는다. 필요한 것의 부재로 인한 간절한 욕구가 창의적 사고의 밑바탕이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 상황이 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발상의 전환을 하려 노력했어요. 인간의 작은 전두엽을 갖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다가 문득 그 계획이 떠올랐지 뭡니까! 주말마다 교회로 나가 신앙 생활을 하고 필요한 추종자를 양성하겠다는 그 계획 말이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기막힌 계획이 아닙니까!"
교회에 들어가셨다고요? 그 여파는 생각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당면할 수 있는 위험이라던가.
"흠, 뭐 인간들은 저 같은 존재가 성소를 찾는 일을 두고 신성모독이라거나 신성을 범하는 거라 비난을 하겠지만, 그건 우리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죠. 우린 존재 자체로 신성모독이고 신성을 범하는 데 존재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존재에 대해 죄를 물을 수는 없죠. 그렇게 죄를 물으려던 인간들은 지금 지옥에 와있어요. 그건 그런 행동이 잘못된 일이라는 의미죠. 히틀러나 밀로셰비치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심지어 신조차도 원죄를 두고 인간의 존재 자체를 죄악으로 규정한 건 아니잖습니까? 존재와 동시에 주어진 하나의 짐인 것이죠. 만약 존재를 죄라고 여겼다면 그 영감이 대홍수가 있기 전에 굳이 노아를 방문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뭐 제가 특별히 다른 죄를 저지른 것이냐? 그것 역시 아니었죠!
우리들이 교회 같은 장소에 발을 들이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운 건 사실입니다. 모두가 그 일을 병적으로 겁내니까요. 헌데 아이러니한 건 실제로 성소에 발을 들이는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물리적 위해를 끼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더 아이러니한 건 우리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고요.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간 목회자들은 '이 곳은 주님의 거처입니다.'라 말합디다만. 이치를 따져보자고요. 세상 어딘들 신의 거처가 아니겠어요! 심지어 이 지옥마저도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망할 본성이 문제죠. 규칙이라면 거짓 논리에까지도 굴종적인, 우리 지옥 형제들이 가진 더러운 노예 본성 말입니다. 악마가 성소를 침범할 수 없으리라는 인간들의 믿음 덕에 이미 우리의 생각이 병들었는데, 20세기 이후의 영화 산업 발전이 우리의 엉뚱한 상상력을 부채질 했어요. 성소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유발되던 시대를 생각해봐요. 그렇게 강화된 믿음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켜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빚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다시 그리 못하겠지만 다행히 당시의 저는 인간의 몸을 빌어 태어난 상황이었죠. 저는 이 거짓 논리의 허와 실을 바탕으로 기적에 가까운. -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기적'이란 건 천박한 표현이지만 지금 이것보다 적합한 어휘가 없네요. 흠, 기적에 가까운 사고 전환이 가능했어요. 고정의식을 타파한 거죠. 물론 무의식 속에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킬 잔재 공포가 있을까 두려워, 교회로 들어설 때마다 '이건 그저 건물일 뿐이야. 이건 그저 건물일 뿐이야.'하고 속으로 되뇌곤 했어요.
아무튼 초창기 저의 교회 공략은 참신한 사고와 과단성, 정교한 사고 전환이 빚어낸 놀라운 업적이었다는 걸 기록해두셔야 할 겁니다."
처음에는 계획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요.
"그랬죠. 그 무렵 저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학교에 진학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추종자를 얻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계획이 틀어진 거죠. 학교의 급우들은 저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듯 했는데 실은 알게 모르게 벽을 둘러치고 있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이 부정한 제 존재를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더군요. 아버님이나 다른 군주님들께서도 아시겠지만, 그런 경우라면 제 일이 무척 어려워질 테니까요.
다행히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문제는 여전히 있었어요. 전 창녀의 자식으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예쁜 옷이나 좋은 학용품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라벨만 붙지 않았을 뿐, '난 하위 5%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할 추레한 옷을 입고 다녔죠. 그게 바로 사단이었어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신조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빈한한 저를 따돌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건 우리가 설파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단면이었고요!
특히 여기에는 그들의 부모가 크게 한 몫을 했는데, 아마도 그들은 등하교 길에 아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이렇게 말했겠죠. '아까 그 애 이름이 뭐니? 그 헐렁한 옷을 입은 애 말이야. 민규? 그 애 이름이 민규였구나. 앞으로 민규랑은 놀지 마라. 왜 그러냐고? 아무튼 민규랑은 놀지마!'하는 따위의 가정교육 말예요.
제가 그 사실을 안 것은 짝꿍으로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민지가 어느 날 갑자기 냉랭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황 파악을 위해 집요하게 물으니 민지는 "우리 엄마가 너같이 더러운 애랑 놀지 말랬어."라 말하더라고요. 뭐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눈에서 눈물이 핑 돌대요. 정말 당황스웠지요. 당시에는 인간의 몸을 빌리고 있어 가끔 그네들의 감성을 느낄 때가 있었거든요. 부신피질과 호르몬 말예요. 아무튼 제 생각엔 군주님들께서도 인간 부모들의 저런 교육법에서 우리의 새로운 악덕을 연구하고 개발하실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몇몇 청중들은 인간들에게 비교되자 불만스럽게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당시로 접근이 가능한 아이들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튼, 당시로서 제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아이들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런 녀석들은 사심이 없고 순진해 우리의 술책이 파고들 여지가 없었죠. 그들을 이용하자면 악마의 술책이 아닌 인간의 간교함이 필요했는데 제 조건은 그런 면에서 어중간했습니다. 이쪽도 반이고 저쪽도 반이고. 전 우리의 적이 2천년 전에 왜 그리 고민이 많았고 방황도 많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죠.
(청중들의 웅성거림.)
학교에서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중간고사였어요. 중간고사에서 전환점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죠. 뛰어난 학업 성적이라면 이기적인 아이들의 벽을 허물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은 인간들의 드라마를 통해 얻은 세상의 진리였는데....... 음, 저쪽 세상은 원래 그래요. 가난한 자는 학업을 성취해 부유한 자들과 교류할 수 있고, 그들의 중간 관리인으로서 반쯤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중간에 많은 시간이 공백으로 남지 않습니까? 당신은 언제 어디서 강도 높은 경쟁에 노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말씀하신대로 그 순간에도 제 경쟁자는 옛 제자들을 찾아내며 세력을 모으고 있을 공산이 컸죠. 저도 바지런히 움직이며 그들의 계획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저쪽에는 '궁핍은 발전을 낳는다. 필요한 것의 부재로 인한 간절한 욕구가 창의적 사고의 밑바탕이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 상황이 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발상의 전환을 하려 노력했어요. 인간의 작은 전두엽을 갖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다가 문득 그 계획이 떠올랐지 뭡니까! 주말마다 교회로 나가 신앙 생활을 하고 필요한 추종자를 양성하겠다는 그 계획 말이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기막힌 계획이 아닙니까!"
(비명과 함께 소란이 일었다. 살가죽이 찢기는 소리와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군주들의 공포어린 목소리에도 소란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교회에 들어가셨다고요? 그 여파는 생각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당면할 수 있는 위험이라던가.
"흠, 뭐 인간들은 저 같은 존재가 성소를 찾는 일을 두고 신성모독이라거나 신성을 범하는 거라 비난을 하겠지만, 그건 우리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죠. 우린 존재 자체로 신성모독이고 신성을 범하는 데 존재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존재에 대해 죄를 물을 수는 없죠. 그렇게 죄를 물으려던 인간들은 지금 지옥에 와있어요. 그건 그런 행동이 잘못된 일이라는 의미죠. 히틀러나 밀로셰비치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심지어 신조차도 원죄를 두고 인간의 존재 자체를 죄악으로 규정한 건 아니잖습니까? 존재와 동시에 주어진 하나의 짐인 것이죠. 만약 존재를 죄라고 여겼다면 그 영감이 대홍수가 있기 전에 굳이 노아를 방문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뭐 제가 특별히 다른 죄를 저지른 것이냐? 그것 역시 아니었죠!
우리들이 교회 같은 장소에 발을 들이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운 건 사실입니다. 모두가 그 일을 병적으로 겁내니까요. 헌데 아이러니한 건 실제로 성소에 발을 들이는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물리적 위해를 끼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더 아이러니한 건 우리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고요.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간 목회자들은 '이 곳은 주님의 거처입니다.'라 말합디다만. 이치를 따져보자고요. 세상 어딘들 신의 거처가 아니겠어요! 심지어 이 지옥마저도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망할 본성이 문제죠. 규칙이라면 거짓 논리에까지도 굴종적인, 우리 지옥 형제들이 가진 더러운 노예 본성 말입니다. 악마가 성소를 침범할 수 없으리라는 인간들의 믿음 덕에 이미 우리의 생각이 병들었는데, 20세기 이후의 영화 산업 발전이 우리의 엉뚱한 상상력을 부채질 했어요. 성소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유발되던 시대를 생각해봐요. 그렇게 강화된 믿음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켜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빚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다시 그리 못하겠지만 다행히 당시의 저는 인간의 몸을 빌어 태어난 상황이었죠. 저는 이 거짓 논리의 허와 실을 바탕으로 기적에 가까운. -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기적'이란 건 천박한 표현이지만 지금 이것보다 적합한 어휘가 없네요. 흠, 기적에 가까운 사고 전환이 가능했어요. 고정의식을 타파한 거죠. 물론 무의식 속에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킬 잔재 공포가 있을까 두려워, 교회로 들어설 때마다 '이건 그저 건물일 뿐이야. 이건 그저 건물일 뿐이야.'하고 속으로 되뇌곤 했어요.
아무튼 초창기 저의 교회 공략은 참신한 사고와 과단성, 정교한 사고 전환이 빚어낸 놀라운 업적이었다는 걸 기록해두셔야 할 겁니다."
# by | 2008/07/08 14:46 | [소설] 降臨 | 트랙백 | 덧글(4)





